영화 '페이스 블라인드'를 통해 본 안면인식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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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절모를 쓴 남자의 얼굴 앞에 연두색 사과 하나가 떠 있는 이 작품은 초현실주의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중절모를 쓴 남자’입니다. 사과가 얼굴의 이목구비를 완전히 가리고 있어서 남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이 작품은 안면인식장애의 개념을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문용어로 ‘안면실인증(Prosopagnosia)’이라 불리는 안면인식장애. 우리나라에서는 정확한 수치가 알려지지 않았으나 미국인의 경우 약 2% 정도가 안면인식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지난 6월에 개봉한 영화 ‘페이스 블라인드’는 바로 이 안면인식장애를 겪는 사람의 심리상태와 이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당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는데요, 실제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이 안면인식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불안해진 사람들이 안면인식장애 테스트를 해 볼 정도였다고 합니다. 

영화의 원제는 ‘Face In the Crowd’로, ‘군중 속의 얼굴’이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은 불의의 사고로 안면인식장애를 갖게 되고, 이로 인해 군중 속에서 자신을 해치려는 범인의 얼굴을 눈앞에서 알아채지 못합니다. 점차 극도의 공포감에 사로잡히는 영화 속 주인공의 모습은 안면인식 장애 환자들이 겪게 되는 상황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눈을 뜨는 순간 모든 얼굴이 뒤바뀐다!

본격적으로 안면인식장애를 알아보기에 앞서, 뇌의 기억 장치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뇌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블로그에서 다뤄진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뇌의 기억 장치에 대해 상기해보도록 하죠. 우리의 뇌는 정보를 통제하는 곳입니다. 단기 기억은 뇌의 ‘편두엽’이란 곳에 저장되는데, 이때 ‘기억’이란 감각을 느끼는 것과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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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보죠. ‘바나나’라는 개념의 기억은 바나나의 미각, 촉각, 시각, 청각, 후각 등의 모든 감각이 이를 인지하는 기관을 통과한 후 편두엽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신경 회로를 ‘파페츠 회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파페츠 회로는 '해마-유두체-시상-대상회-해마방회-해마'로 이어지는 뇌 연합구조를 말하며, 우리가 생활 속에서 필요로 하는 정보들은 이 회로로 들어가 장기기억으로 저장되게 됩니다.  

 ‘처리과정의 장애’, ‘범주화의 장애’라 불리기도 하는 안면인식장애는 시각을 담당하는 좌측 두정엽 손상, 충격으로 인한 두부의 외상, 뇌졸중, 퇴행성 질환의 변화 등 뇌에 직접적인 손상으로 얼굴을 판단하는 영역의 뇌 세포가 사라져 안면인식 기능이 상실되므로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는 능력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정신적 충격이나 유전적 요인으로 인해서도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신적 요인보다는 뇌 손상으로 인한 발생이 더 많다고 합니다.

영화 페이스 블라인드의 한장면


실제 '페이스 블라인드' 속 주인공은 연쇄살인범의 살인 현장을 목격하고 그를 피해 도망치다가 바다로 떨어지면서 머리를 크게 다치고, 그 후 안면인식장애를 갖게 되었었죠.

최근 fMRI 등의 연구로 밝혀진 바로는 측두엽(temporal lobe)의 방추이랑(fusiform gyrus)에 얼굴 정보만을 받아들여 처리하는 영역이 있는데 이곳이 손상될 경우 안면인식장애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물론 이곳에서만 얼굴 정보를 인식하는 것은 아니기에 100% 이곳의 손상이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안면인식장애는 한번 발생하면 치료가 불가능하여(아직까지 알려진 치료법은 없습니다.) 영구적으로 증상을 겪어야 한다고 합니다. 물론 정신적인 원인으로 발생한 경우에는 심리치료를 통해 개선되기도 한다고 하네요.

영화 '페이스블라인드'의 한장면. 사고 당시 잃어버린 가방을 지하철에서 발견하면서 공포에 휩싸이는 주인공.

 안면인식장애의 가장 큰 고통이라고 한다면, 바로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데서 오는 두려움일텐데요. 안면인식장애 환자는 감각이나 지능장애, 주의력 결핍, 실어증 등의 증상이 없으며 오직 사람들의 얼굴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안면인식장애는 지금 보고 있는 얼굴이 몇 초 뒤에 다른 사람의 얼굴로 보이는 증상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사회생활에 있어 심각한 지장을 줄 수 있는 장애입니다.

영화 ‘페이스 블라인드’ 주인공의 직업은 초등학교 교사였으나 자신이 가르치던 아이들의 얼굴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더 이상 아이들을 돌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남자친구나 친한 지인들을 믿지 못하게 되거나 범인이 앞에 있어도 알아보지 못하는 등 정신적으로도 심한 고통을 느끼게 되죠.

영화 '페이스 블라인드'의 한장면. 주인공은 사고 후

이렇듯 안면인식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가족과 친구 등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의 얼굴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며 심지어 거울 속 자신의 얼굴조차 자신의 얼굴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한 경우 거울로 자신을 보았을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느끼기도 한다는데요, 이를 ‘거울현상’이라고 합니다. 

안면인식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을 인식할 때 얼굴이 아닌 특징으로 인식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콧수염이 길거나, 특정 헤어스타일, 목소리, 자주하는 몸짓이나 습관 등을 잘 기억한 후 사람들은 인식한다고 하니 오히려 주변을 인식하는 능력은 보통사람들 보다 더 뛰어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을 낯설게 느끼는 그 슬픔은 너무나 크지 않을까요? 고칠 수 없기에 더 안타까운 안면인식 장애. 멀지 않은 시간에 치료방법이 나오길 기대해봅니다.

출처 : 임상신경국소진단학(Localization in Clinical Neurology) Third Edition
- Paul W. Brazis, Jaseph C. Masdeu, Jose Biller  -김승민, 선우일남, 이광수, 최경규, 최일생  -도서출판 정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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