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1593년 선조가 임진왜란으로 피신을 갔다가 돌아온 후 덕수궁에서 지내면서, 궁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광해군 때는 덕수궁을 ‘경운궁’으로 불렀고 인목대비가 유폐된 곳이기도 합니다. 인조가 즉위한 이후로 오랫동안 궁의 기능이 사라졌다가 아관파천 후 1897년 고종이 경운궁으로 환어하고, ‘대한제국’이 되면서 ‘황궁’으로 새롭게 거듭났다고 합니다. 고종은 ‘경운궁 프로젝트’를 실행시켜 독립국의 위용을 드높이고 동도서기의 아이디어를 실현하고자 했으나 일제에 의해 저지당했고, 황제 자리를 강제로 양위한 후, 1919년 덕수궁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프로젝트 중에서>-

 지난 9월 19일부터 진행되고 있는 <덕수궁 프로젝트>파란만장한 조선시대 역사적 사건의 현장에서 현대미술가들의 새로운 해석을 더하여 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중화전, 함녕전, 덕흥전, 석당, 정관헌 등에 제각각 작업이 이루어졌고, 퍼포먼스와 공연도 볼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덕수궁 프로젝트는 수많은 사람들이 덕수궁을 찾아 예술적 영감을 얻고, 휴식과 즐거움을 나누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덕수궁 프로젝트>에도 과학적 요소들이 숨어있다고 하는데요, 미술과 조각, 퍼포먼스로 이루어진 덕수궁 프로젝트에 과연 어떤 과학이 숨어있을까요?

덕수궁 프로젝트 내부 지도 (출처 : 덕수궁 프로젝트 브로셔)

덕홍전 '자리'

먼저 덕홍전으로 가봅시다. 덕홍전은 원래 신성한 ‘터’였다고 해요. 하지만 일본이 일본인 통치자의 접견 장소로 변형시켰고, 바닥을 입식 구조로 바꾸었으며 내부를 화려하게 장식하였죠. 가구 디자이너 하지훈은 미적으로 아름다운 공간이 일종의 변형과 왜곡의 산물이 되었다는 아이러니에 주목하여 ‘자리’라는 작품을 제작했다고 합니다.

이 전시물은 관람객들이 직접 체험해볼 수 있게 되어있었는데요, 크롬 도장의 좌식 의자가 가득 설치된 이곳에서 올록볼록한 의자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으니, 단음으로 구성된 가락의 울림이 전해져와 마음 깊숙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의자에 앉아 있으면 천장과 벽면의 아름다운 장식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데요, 실내의 벽면과 천정 장식이 의자의 표면에 다시 ‘반영’되도록 하여 들어서는 순간 압도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크롬 도장은 광택이 좋아서 빛이 매우 잘 반사되는데, 울퉁불퉁한 모양으로 난반사가 일어나 천정의 장식을 왜곡되게 비추고, 이것이 자연광이나 조명의 빛에 의해 다시 변형되고 왜곡되는 것이죠. 그 모습이 더욱 독특한 느낌을 자아냅니다.(빛의 난반사)

자리 - 하지훈 作(출처 :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 http://www.moca.go.kr/exhibition/exhibitionManager.do?_method=exhView&retMethod=getExhProgressList&progresscode=01&tpCd=&exhId=201204250002881)

사운드 아티스트 성기완의 음악은 마치 과거의 한 기록 속에 들어와있는 듯 느끼게 만듭니다. 여인의 흐느낌 혹은 찻잔이 부딪히는 소리, 때론 웃음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요, 소리는 크롬 도장의 의자에 부딪쳐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아름다운 소리에 담긴 과학은 바로소리의 반사’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빛처럼 소리 역시 벽과 같은 장애물을 만나면 부딪쳐 반사되는데요, 장애물이 굴절이나 곡면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면 소리가 닿을 때 여러 방향으로 반사되게 됩니다. 특히 소리는 매끄러운 매질일수록 더 잘 반사됩니다. 아쉽게도 소리와 장애물의 거리가 짧고 굴곡이 심하지 않아 공명현상을 느끼기는 어려우나 좀 더 입체감 있고, 깊은 울림을 가진듯 들렸던 것은, 저의 기분 탓도 있겠지요? ^^

덕수궁의 비극적 운명의 상징, ‘눈물’

 석어당으로 발길을 돌리면, 덕수궁의 비극적 운명을 상징하는 눈물이 있습니다. 석어당은 1608년 선조께서 승하한 곳이자, 광해군 시대에 인목대비가 5년간 유폐되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곳에 설치된 눈물 조각은 수 천 개의 발광다이오드 조명에 의해 굴절되고 반사되어 형체를 정확히 알아 볼 수 없습니다.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역설의 미학이 느껴지는 조각이지요. 덕혜옹주를 포함한 그 시대 궁중 여인들의 눈물이기도 한 이수경 작가의 작품 ‘눈물’은 덕수궁 프로젝트의 상징과도 같이 너무도 아름답게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눈물 - 이수경 作

 눈물의 조각인 발광 다이오드는 영어명칭인 LED로 풀어쓰면, Lignt Emitting Diode라고도 합니다. 발광 다이오드는 칼륨, 인, 비소 등을 재료로 한 다이오드(diode)로 전류가 흐르면 빛을 냅니다. 즉, 반도체에 전압을 가할 때, 발광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발광다이오드라는 용어가 우리에게 익숙지 않지만 우리 주변에는 수 많은 발광다이오드가 있습니다.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시청 광장에 전광판이 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응원을 하러 옵니다. 이 때, 전광판에는 수 만개의 발광 다이오드가 걸려 있어 빛을 내는 것입니다. 또한, 거리의 간판들이 밤이면 빛을 내는 것이나 자동차 브레이크 등, 신호등 등 반짝임을 연출하는 모든 것이 발광다이오드라니, 우리는 발광 다이오드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토머스 에디슨의 발명품인 백열전구 또한 발광다이오드를 활용한 작품인데요, 일반 전구보다 지속시간이 20배 이상 길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덕수궁의 ‘눈물’이 오랜 시간 동안 반짝이며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전해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발광다이오드의 긴 지속시간 덕분도 있겠네요.^^ 

살아있는 듯한 덕혜옹주 실루엣 , 'Better Days'
 
 석어당이 한복 디자이너이자 컬렉터인 김영석 작가님에 의해 다양한 사연을 담은, 여성적인 공간으로 재탄생되었습니다. 방안을 가득 채운 개화기 시대의 가구와 공예품, 한복, 꽃장식은 덕혜옹주가 살아있던 그 시대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게 해줍니다. 이곳의 가장 특징적이면서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석어당 내부에서 볼 수 있는 덕혜옹주의 실루엣입니다. 마치 덕혜옹주가 실제 살아 있는 듯 느껴져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였답니다.

Better Days - 김영석 作 (덕혜옹주가 살았던 시대를 연상하는 공간)


입체적으로 구현된 덕혜옹주의 실루엣에는 어떤 원리가 숨겨져 있을까요?
사람의 두 눈은 평균적으로 약 65mm간격의 차이가 있습니다. 사물을 바라볼 때면, 좌우의 눈이 각기 다른 상이 광각을 가지고 망막에 결상됩니다. 여기서 광각이란 두 눈으로 한 점을 볼 때 그 점과 두 눈을 잇는 두 직선이 이루는 각으로, 원근감을 인식하도록 해줍니다. 이는 물체의 두끝에서 눈에 이르는 두 개의 직선이 이루는 각으로 물체의 크기를 판단하게 해주는 ‘시각’과 분명히 구분해야 합니다.

우리는 망막에 결상된 광각을 뇌가 해석해서 입체적인 공간을 현실처럼 느끼게 됩니다. 극장에서는 입체 영상을 볼 때 3D전용 안경을 착용하는데요, 그런데 덕혜옹주의 실루엣은 특수한 안경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 이유는 필터 기능이 이미 영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영상을 제작할 때, 기둥렌즈를 영상물 앞에 부착하여 사용하는 방식인 Lenticular 방식이나 빛의 진행방향에 따라 좌우로 차단되는 칸막이 필터를 사용하는 Parallax Barrier 방식을 이용하면 언제 어디서든 현실감 있는 덕혜옹주의 고운 자태를 특수 안경 없이 볼 수 있답니다.  

덕혜옹주 실루엣 출처 :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 http://www.moca.go.kr/exhibition/exhibitionManager.do?_method=exhView&retMethod=getExhProgressList&progresscode=01&tpCd=&exhId=201204250002881

 <덕수궁 프로젝트>는 오는 12월 초까지 이어진다고 하는데요, 아쉽게도 미술관 내부 전시는 마감됐지만 설치된 작품들은 볼 수 있다고 하니, 더 추워지기 전에 날씨 좋은 날,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덕수궁으로 나들이를 가서 역사의 숨결과 예술의 향연, 그리고 과학의 신비로움을 가까이서 보고, 듣고, 느껴보시는 건 어떨까요?^^

* 첫번째 사진 출처 : 덕수궁 프로젝트 브로셔(국립현대미술관에 공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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