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 한국 고병리학의 길을 열다

학봉장군 미라 부검 사진

학봉장군 미라 부검 사진

고병리학(paleopathology)이란?
고병리학은 오래된 시신이나 화석의 질병을 연구하는 학문이며 흔히 미라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미라는 오랜 기간 보존된 사람이나 동물의 시신을 칭한다. 흔히, 미라하면 이집트를 떠올리기 쉽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미라는 발견되어 왔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미라의 수는 많지 않다. 조상의 시신을 소중히 여기는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사후에 시체가 대부분 화장되거나 재 매장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서 우리나라에서는 고병리학이 발달할 여지가 좁았다. 하지만 2000년 이후부터 미라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가 진행되면서 학계와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미라는?
세계최초의 임산부 미라인
파평 윤씨 모자미라’, 대전 계룡산 인근에서 발견된 학봉장군 미라' 등은 대표적인 우리나라의 미라이다. 또한 안동미라단웅등의 미라가 학계에 보고되면서 외국에도 널리 알려졌다. 이외에도 후손 없이 도로공사나 택지정리 중 우연히 발굴된 무명의 미라들인 봉미라’, ‘흑미라 등도 소개된 바 있다.

많은 의학, 역사학 전문가들이 미라연구에 매진하고 있는데, 특히 요즘엔 미라연구에 대한 언론보도가 확산되면서 미라가 발견되는 경우, 문중에서 연구 자료로 기증해주는 경우가 많아 연구가 더욱 활발해졌다.

고려대 구로병원에 보관 중인 미라의 모습

이런 미라를 기증받아 보관하고 있는 기관으로는 고려대학교 의과대학과 계룡산 자연사박물관, 단국대 박물관과 안동박물관 등이 있는데, 이 중 고려대 의과대학은 완전한 형태의 미라 4구와 반미라 형태 2구를 보관하고 있어 가장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고려대 구로병원에 보관 중인 반미라의 모습

고려대 구로병원에 보관 중인 반미라의 모습

해서, 우리나라 미라 연구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병리학교실 김한겸 교수를 만나 미라를 직접 관찰해보고 전문가의 설명을 들어보기로 했다. 김한겸 교수는 미라를 연구하는 국내 의사로 잘 알려져 있다 


김한겸 교수

고려대 의과대학 김한겸 교수

기자 : 미라와의 인연을 맺은 계기는 무엇입니까?

김한겸 교수 : 질병의 원인과 발생과정을 연구하는 기초의학자로서 오래된 시신인 미라의 사인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2002년 9월 경기도 파주시에서 ‘파평 윤씨 미라’가 발견되고, 당시 부검을 총괄하면서 미라의 신비한 매력에 매료되어 지금껏 미라와의 인연을 이어오게 되었습니다.  

기자 : 사람들이 왜 미라를 연구하는 것일까요?

김한겸 교수 : 그것은 수백 년, 수천 년 전에 사망한 사람의 시신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미라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타임머신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또한 창의적인 사고를 거친다면 의학 외에도 여러 분야와의 연계를 통해 연구 주제의 확장은 물론 시너지 효과도 누릴 수 있다고 봅니다.  

기자 :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미라가 발견되는 경우가 드문데요, 미라가 만들어지는 원인은 무엇인가요?

김한겸 교수 : 미라가 만들어지는 원인은 다양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라하면 이집트미라를 떠올리지만, 세상은 넓고 미라의 종류 역시 다양합니다. 그 중에서도 남아메리카는 미라의 보고라 할 수 있는데요, 이는 자연환경 때문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건조한 아타카마 사막이 있기 때문에 건조한 미라가 많이 발생하며, 차고 건조한 바람이 부는 안데스 산맥에서는 잉카시대 때 산에 제물로 바친 미라들이 발견됩니다. ‘친초로미라’라는, 박제와 인형의 중간 형태를 지닌 미라들도 많습니다. 이밖에 북유럽이나 스코틀랜드 및 북아일랜드에서는 소위 ‘보그피풀’이라는 미라가 많이 별견되는데, 이는 늪이나 습지가 많은 지역적 특성 때문입니다. 늪의 화학성분으로 인해 미라가 부패하지 않고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에서 발견되는 미라들은 독특한 장묘문화 덕분에 만들어집니다. 한국이나 중국의 경우 ‘회곽묘’라 불리는 일종의 석관을 사용하는 문화가 있는데, 덕분에 산소가 차단되는 환경이 조성되어 시신이 오래 보존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미라의 생성원인(회각묘)

출토 당시 회각묘의 모습

출토 당시 회각묘의 모습

최근 서울대 신동훈 교수팀은 회각묘에서 미라가 생성되는 원인을 실험으로 증명했다

회각묘에 의한 미라 생성 실험

회각묘에 의한 미라 생성 실험 (사진 :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신 교수팀은 국립문화재연구소 지원으로 20108월부터 5개월에 걸쳐 미라 형성 과정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고, 이에 대한 결과를 그해 말 공개했다. 실제 회곽묘 비율에 맞춰 정밀하게 축소한 가로 19.8cm, 세로 10.6cm 크기의 작은 나무관을 만들었으며, 36mm 두께의 삼물로 관 주위를 감쌌다.

10번에 걸쳐 실험한 결과, 관 주위에 설치한 삼물의 온도가 최고 200까지 올라갔으며, 관 내부에도 열이 전달돼 최고 149까지 상승했다. 관 내부 온도가 100이상 유지된 시간은 최대 210분을 넘어섰다. 실제로 관 내부에 실험용 흰쥐를 이산화탄소로 안락사하여 넣어봤더니, 그 사체가 13주가 지나도 썩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 교수는 연구결과를 놓고 보면 한국미라는 부패하다가 도중에 중단된 것은 아닌 듯하다고열로 살균돼 관 내부가 무균 상태로 유지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기존 상식과는 전혀 다른 기전을 따른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미라는 장묘문화와 기후환경이 만들어낸 하나의 종합 예술 작품이다. 우리는 조상들이 전해준 이 선물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그런 과거가 있었기에 존재하는 현재의 우리문화를 더욱 소중히 여기고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과제가 아닐까? 

, 기사 |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블로그 기자 하 상 윤
취재협조 및 자문 |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김한겸 교수

 

* 이번 시간에는 고병리학과 한국 미라만의 특수한 생성 과정을 중심으로 살펴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오늘 잠시 언급된 '파평 윤씨 모자 미라', '학봉 장군 미라'의 사망원인과 당시 생활환경을 과학적으로 추적해나가는 과정을 살펴보고, 부검(수사) 과정에서 도입된 다양한 학문 분야(의학, 인문학, 자연과학)와 그 임무를 소개할 예정이니 많이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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