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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Y - 기억과 첫사랑의 상관관계

가을이 왔습니다. 따가운 햇살을 자랑하던 여름이 언제 있었냐는 듯, 선선한 바람과 높은 하늘, 나무에 수놓은 단풍 소식도 들려옵니다. 특히 가을엔, 날씨 탓인지, 기분 탓인지, 왠지 모르게 외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첫사랑을 떠올리기도 하는데요. 첫사랑이 오랫동안 기억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기억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trustypics / http://www.flickr.com/photos/trustypics/5458596371

+기억의 습작

기억이라는 특별한 활동을 이해하려면 기억을 여러 종류로 구분해야합니다. 기억은 하나의 덩어리 같은 것이 아니며 뇌는 새로운 자극을 무조건 순서대로 차곡차곡 쌓아 놓는 장소가 아닙니다. 만약 이런 기억력이라면, 우리는 0세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기억을 한 톨 남김없이 다 기억하고 있어야겠죠?

감각 기관을 통해 받아들이는 자극은 뇌에서 아주 잠깐, 기껏해야 몇 십분 정도 저장됩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뇌는 그 자극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데요. 예를 들어 왼쪽에서 어떤 소리가 났다면 뇌는 그 소리가 오른쪽 귀보다 왼쪽 귀에서 조금 먼저 들렸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어 소리의 방향을 판단합니다. 뇌에는 감각 정보를 기억하는 부분이 있고 그곳에 외부 세계에서 수집한 모든 정보가 계속 남아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다면 뇌가 너무 부담이 되어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첫사랑에 대해 다룬 영화 '건축학개론' ost 기억의 습작

우리가 어떤 정보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면 그 정보는 곧바로 사라지지 않고 단기 기억으로 넘어갑니다. 단기 기억은 이름 그대로 짧은 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대체로 단기 기억으로 들어간 정보는 몇 분에서 몇 시간 정도 머물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정보를 되풀이하려고 애쓴다면 단기 기억에 머무는 시간도 그만큼 길어집니다. 단기 기억에는 언제나 반대로 움직이는 두 가지 힘이 작용합니다.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힘과 저장된 정보를 사라지게 하는 힘이 그것이죠.

뇌에는 단기 기억 외에 장기 기억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단기 기억에서 머무는 정보가 중요하거나 강한 인상을 준다면 장기 기억으로 옮겨집니다. 이 장기 기억은 수십 년까지도 보존됩니다.

우리가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이유도, 어쩌면 처음으로 느낀 사랑의 강한 인상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CarbonNYC / http://www.flickr.com/photos/carbonnyc/132922595/

+ 기억을 위한 뇌

뇌는 정보를 독립적으로 저장하지 않습니다. 기억은 다양한 연결망으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입니다. 신경 세포의 연합은 새로 들어보는 정보에 반응하여 다른 정보나 감정과 연관을 짓습니다. 이것은 전두엽이 어떤 정보를 저장하고 어떤 정보를 저장하지 않을지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줍니다.
신경 전달물질도 기억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습니다. 아세틸콜린은 기억을 위한 집중력을 향상시켜줍니다. 기분을 좋게 해주는 세로토닌과 노르아드레날린이 분비될 때면 정보가 기억에 훨씬 더 잘 남게 됩니다. 그래서 정신이 맑고 즐거울 때 배우는 지식이 나중에도 기억하기 쉽습니다.

장기 기억에서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도파민에 의한 뇌의 보상 체계입니다. 보상 체계가 작동되면 도파민이 분출되면서 새로운 정보를 과거의 즐거운 경험과 연결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보상 체계가 그 정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할수록 장기 기억에 강하게 저장됩니다.

새로운 사람과 연애를 할 때, 새로운 사람이 좋지만, 첫사랑이 자꾸 생각나는 이유도 여기서 찾아볼 수 있는데요. 첫사랑 때 느꼈던 과거의 즐거운 경험을 새로운 사랑과 연결시켜 자꾸 떠올리게 되는 것 아닐까요~?

@IYLIAAA / http://www.flickr.com/photos/-lucaslove/2480196861


+ 내 머릿속의 지우개(?)

길거리를 걷다가, 어디선가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엇! 이 노래는- 분명 아는 노래인데, 노래 제목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서 답답한 적 있으셨나요?
기억력이 감퇴되고 있는 건지, 혹시 조기치매(?)나 알츠하이머 같은 몹쓸 병이 아닌지 의심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몇 시간 뒤, 혹은 하루 뒤에 문득 ‘아, 그 노래 제목이 이거였지’ 하며 기뻐하던 순간.

이런 경우에는 저장된 정보를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단지 장기 기억으로부터 재빨리 불러내지 못했을 뿐인거죠. 비유를 하자면, 돌에 새겨진 이름 위에 오랜 세월 동안 먼지가 덮여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그 먼지를 털어 내는 순간 다시 그 돌 위의 이름이 보이는 것이죠.

알츠하이머를 다룬 영화 '내머리속의 지우개' (출처:보도자료)

이에 반해, 위에서 언급한 알츠하이머와 같은 질병은 수많은 기억이 다시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사라지게 됩니다. 뇌 속에 있는 기억을 불러내기도 인지하기도 힘듭니다. 알츠하이머는 뇌 속 신경 세포가 파괴되어 버리기 때문에 돌에 새겨진 이름 위에 먼지가 쌓였다기 보다는 그 이름 자체가 점차 지워지는 것과 같습니다. 특히 신경 전달 물질의 균형도 깨지고 마는데, 신경 전달 물질 중에서도 특히 아세틸콜린이 부족해집니다. 알츠하이머 환자들은 장기 기억이 저장되지 않으니 자신에게 발생하는 모든 자극이 계속 새롭다고 느낍니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서 알츠하이머병이 다루어진 적이 있습니다. 손예진 주연의 ‘내 머릿속의 지우개’, 드류베리모어의 ‘첫키스만 50번째’ 등.. 영화 속 주인공들은 사랑했던 사람과 함께했던 추억은 기억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명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이어갑니다. 뇌 속에 담긴 기억이나 추억이 아닌 심장이 반응하고 기억하며 순간순간 사랑하는 모습은 참으로 신기하기만 합니다. 뇌의 숨겨진 잠재기억 때문일까요?

@forbidden.snowflake / http://www.flickr.com/photos/forbiddensnowflake/414318418


+ 심리학적 측면에서 본 첫사랑이 잊혀지지 않는 이유

이번에는 '뇌'라는 범주를 벗어나 심리학적 측면에서 첫사랑의 기억이 오래가는 이유를 살펴볼까요? 유독 남자에게 '첫사랑'의 존재는 절대 잊혀질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게 되는데요. 사실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첫사랑'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게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심리학적 측면에서 본다면 '자이가르닉(Zeigarnik Bluma)' 효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자이가르닉 효과란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을 끝마치지 못하거나 완성하지 못했을 때 두고두고 오랜 시간 머릿 속에 남아 완성할 때까지 계속해서 기억하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물론 일을 마치게 되면 관련 기억들은 쉽게 잊혀진다고 하네요. 어쨌든 첫사랑 역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더 오래 기억하게 되는데, 바로 이 자이가르닉 효과 때문이겠죠?

이처럼 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다양한 방식으로 뇌에 새겨지게 됩니다. 강렬한 인상, 그보다 더 전에 새겨진 추억에 의해, 그리고 잊혀진 듯 보이지만 잠재기억이란 이름으로.. 물론 장기기억으로 넘어가는 기억들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두고두고 후회나 아쉬움, 혹은 그리운 기억으로 진하게 남게 되죠.

어떤 실험결과에 따르면 이별을 경험했을 때 뇌가 반응하는 부위가 뜨거운 열이 가해졌을 때 반응하는 부위와 동일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별을 경험했을 때 '가슴이 찢어진다'고 표현하는 것 역시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당신의 옆에 있는 이를 소중히 대하세요. 후에 후회로 남지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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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가이(Goodguy)

우리 생활 속 과학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