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적이고 추진력 있는 연구지원, 노벨상으로 가는 지름길"
-루이스 J. 이그나로(Louis J. Ignarro)


 

지난 4월 18일 수요일,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주최로, 한양대학교 백남학술 정보관에서 열린 '노벨상 수상자들과 젊은 과학자들의 만남'루이스 J. 이그나로(Louis J. Ignarro) 교수가 참석하였다. 이번 기사에서는 이그나로 교수가 우리에게 전한 메시지를 중심으로 작성하였음을 밝혀둔다. 


1998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 Louis J. Ignarro 교수 (현 UCLA 의과대학 교수)약 40년 전만 해도 원인을 알지 못했던 심혈관계 질병 치료에 획기적인 연구 결과인 "산화질소"를 발견하였다. 그는 산화질소는 대표적인 대기오염 물질이지만 생체 내에서는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신호 전달물질로 작용하는 것을 밝혀냈다.  

"슬라이드 조절을 어떻게 하죠?"

다소 긴장되고 엄숙한 행사장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신 첫 마디와 함께,루이스 J. 이그나로 교수는 '연구결과가 아닌, 과학기술의 미래에 대한 시각을 발표하고자 하며, 과학자들에게 동기부여를 해 주고 싶다'는 목적을 분명히 밝혔다.

"동기 부여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필수조건"

"특정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동기 부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는 특히 기초과학의 성공을 위해 중요하며, 제도와 대학, 교수 등이 그들의 위치와 지위를 잘 활용해야 한다. 과학자들에게 "노벨상을 타 오라"라고 요구하기보다는, 제도와 대학의 협력이 뒷받침된 '통합의 리더십'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젊은 학생들은 창조적인 연구에 몰두할 수 있고, 교수는 기초연구에 할애할 시간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환경 조성을 위해 교수와 제도, 대학, 기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자유로운 연구 환경, 나는 운이 좋은 사람"
 

과학연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전문적인 것에 집중하거나,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나의 연구 방향은 주로 후자였다. 새로운 연구를 개척하여 우리 몸의 건강을 위한 치료법을 개발하고 싶었다. 노벨상에는 꼭 필요한 두 가지 조건이 있다. "독창적이며, 인류 공헌이 가능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나는 산화질소를 발견하여, 심혈관계 질환(뇌졸중, 당뇨병 등)을 치료하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 이 점이 노벨상을 받게 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유전자 치료, 줄기세포 등은 과학사에서 혁명적 쾌거를 이루었으며, 질환의 예방이나 치료에 응용되고 있다. 앞으로 5~10년 내에 많은 발견이 이루어질 것이며, 기초과학연구는 더욱 필요해진다. 그런데 생명과학과 의학은 막대한 연구자금이 필요한 분야이다. 이 자금을 대는 역할은 주로 정부나 거대 산업체들이 해 왔다. 그러나 현재 산업체들은 예전만큼 기초 연구를 지원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경우, 절세의 목적으로 대학에 기부하려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있었던 UCLA는 이러한 자금이 많았다. 나는 풍족한 환경에서 연구할 수 있었으며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루이스 J. 이그나로 교수의 강연이 끝난 후, 질의응답 시간이 진행되었다. 평소 과학연구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과 패널로 참석한 교수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Q.
교수님을 성장 환경은 어떠셨나요?

A. 나의 부모님은 이탈리아 이민자였고, 나는 뉴욕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초등학교도 다니지 않으셨고, 나는 친가와 외가를 통틀어 학교에 들어간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내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나의 부모님께서는 매우 주의 깊게, 면밀하게 나의 선택을 지도해주셨다. 성공하는 데 부모의 학력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또한 나는 장학금을 많지 받지 않았다. 모든 과목에서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다. 학생 시절 화학이나 생물은 좋아했지만, 역사와 같이 흥미가 없는 과목은 아예 공부하지 않았다. 그래서 성적이 AC로 극명하게 갈렸다. 

Q. 절세 목적으로 대학에 기부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제도적으로 말씀해 주신다면?

A. 기부를 하면, 어떤 자선단체든지 공제를 받아 소득세 등을 적게 낸다. 나는 정치인이 아니다. 그러나 돈을 내는 사람은 공제를 받을 수 있고, 대학은 받은 돈을 연구비로 사용할 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Win-Win' 전략 아니겠나.

 

Q. 공대생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한국 학생들이 기초의학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도 그렇다는데 사실인가요?

A. 의사는 존경 받을만한 직업이다. 그러나 지금은 과연 예전과 같을까 의구심이 든다. 미국은 의사를 꿈꾸는 학생들을 대학원으로 유도하기 위해, 연구소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다. 또한 젊은 과학자와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프로그램 등을 제공했다. 그렇게 꾸준히 노력하다 보니 상황이 바뀌어 이제는 기초의학 연구를 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Q. 교수님의 연구에 도움이 되었던 UCLA의 정책적인 노력이 있었다면?

A. 성공을 거둔 동료들을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모두 '자유'가 있었다는 점이다. 무엇이든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연구의 방향을 잡아 이끄는 대로 나가는 것은 효과가 없다. '너무 무질서한 것 아닌가'하는 비판이 있을 수 있는데, 아니다   

Q. 노벨상은 과학자에게 궁극의 목적입니다. 노벨상으로 향하는 연구에 있어서, 국가의 어떤 정책이 도움이 되셨나요?

A. 정부는 기초과학의 옹호론자로서 기초과학 연구를 촉진해야 한다. 나는 우연하게 노벨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연구의 목적이 노벨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호기심 충족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과학자들에게는 내적인 만족이 중요하지 않은가. 미국은 연구비로 50만 달러를 주고, 대학에게 추가적으로 50만 달러를 더 주었다. 대학이 받은 돈으로 시설 등의 연구 환경을 개선시키니, 연구하기가 편해졌다 

Q. 이 외에도 필요한 사항이 있다면?

A. 국가는 뛰어난 연구 능력을 가진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원해야 한다. 행정가들이 위원회를 조직하고, 자금을 조달하면 글로벌한 국제적인 상을 탈 확률이 높아진다. 미래를 짊어질 젊은 과학자들을 발굴하여 연구를 장려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너무나 많은 학생들이 의대에 진학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는 대학이 학생들에게 더 많은 '동기부여'를 해야 함을 뜻한다 

 
노벨상 수상자들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고, 연구에 대한 그들의 열정을 들을 수 있었던 이번 행사는 자리에 함께한 많은 대학생들과 젊은 과학자들에게도 무척 뜻깊은 시간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취재를 마무리하며 이번과 같은 행사가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머지않아 한국의 '과학 분야 노벨상'이 탄생할 날을 기대해본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블로그 기자단 2기 유 지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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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생활 속 과학이야기

[화학상]

실험실에서 쫓겨난 과학자, 노벨상을 받다

소금이나 금속 같은 고체는 원자나 원자군이 일정한 모양으로 연속해서 배열된 물질이다. 전자현미경으로 보면 원자나 원자군이 대칭구조를 이루며 주기적으로 배열돼 공간을 꽉 채운 모양이 나타난다. 이런 물질이 ‘결정질 물질’이다. 만약 원자가 규칙적인 배열 없이 무작위로 섞여 있다면 ‘비정질 물질’이라고 부른다. 유리가 대표적이다. 즉 고체는 결정질 물질 아니면 비정질 물질 둘 중 하나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2011년 노벨 화학상의 주인공인 단 셰프트만 이스라엘공대 교수는 결정질도, 비정질에도 속하지 않는 물질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이단시되며 학계에서 쫓겨나기까지 했으나 후에 이 주장은 사실로 밝혀졌다. 그가 발견한 것은 결정질 물질과 비정질 물질의 중간인 준결정 물질이었다.

단 셰프트만 이스라엘공대 교수

정설을 뒤집은 새로운 발견, 그러나 무시당한 발견
1982년 4월 8일, 셰프트만 교수가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당시 국립표준국)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있을 때다. 그는 그날도 어김없이 전자현미경으로 합금의 결정구조를 관찰하고 있었다. 중량기준으로 20%의 망간이 섞여있는 알루미늄 합금의 결정구조를 관찰하던 중 원자 배열이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한 회절패턴이 5회 대칭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5회 대칭구조를 가지는 결정은 없다는 게 당시의 정설이었다.

셰프트만 교수 자신도 실험 결과를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같은 실험을 반복하고, 다른 각도에서 찍어 봐도 마찬가지였다. 고민 끝에 동료들에게 이 결과를 말했지만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그의 소속 연구실은 연구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그를 퇴출시켰다. 그러나 셰프트만 교수는 소신을 굽히지 않고, 이 결과를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의 존 칸 박사와 함께 물리학 분야 과학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발표했다. 이후 학계에서는 이런 원자 구조를 가진 결정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논쟁이 벌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과학자들도 준결정을 속속 발견하기 시작하면서 결정학 교과서를 다시 써야 했다.

원하는 성질의 금속을 디자인하다

준결정 강화 마그네슘 합금은 가벼우면서도 단단해 초경량 비행기의 재료로 쓸 수 있다.

준결정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구조가 결정질 물질과 비정질 물질의 중간이다. 따라서 두 물질의 성질을 모두 갖고 있다. 결정질 물질처럼 단단하면서도 비정질 물질처럼 열이나 전기를 잘 전달하지 않는다. 이런 특성을 이용해 준결정으로 면도날이나 프라이팬의 코팅재, 엔진을 보호하는 단열재 등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준결정 자체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준결정의 구조만 빌려 금속합금을 새로 설계할 수도 있다. 결정의 구조를 마음대로 조작함으로써 원하는 특성의 금속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준결정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금속의 조성이나 제조공정을 바꿔 합금을 강하게 만드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 비행기나 자동차, 교량 어디에 쓸지에 따라 필요한 물성대로 금속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준결정이 소재 분야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글 | 김도향 연세대 교수, 준결정체로 창의연구단 단장

[생리의학상]

선천성-후천성 면역 연결고리 찾아내

우리 몸에는 수많은 미생물이 있다. 심지어는 몸을 구성하는 세포보다 더 많은 수의 미생물이 있다고 할 정도다. 이들 미생물 중에서는 소화를 돕거나 각질을 먹는 유익한 것들도 있지만 병을 일으키는 병원균도 있다. 그래서 지구에서 살아남으려면 외부 미생물이 침입했을 때 적극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싸움의 기술’이 필요하다. 이 기술을 연구하는 학문이 면역학이다.

면역계 경종 울리는 ‘미생물 단백질 감지기’

故 랠프 슈타인만

면역은 크게 선천성 면역과 후천성 면역(적응성 면역, adaptive immune)으로 나뉜다. 병원균이 처음 침투했을 때 우리 몸의 선천성 면역계가 즉각 인지하고 반응한다. 하지만 2~3주가 지나거나 동일한 병원균이 다시 침입했을 때 우리 몸은 더 빠르고 더 강력하게 병원균을 무찌른다. 후천성 면역계가 병원균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천성 면역계는 우리 몸속에 이미 존재하면서 외부에서 병원균이 침입할 때를 대비한다. 피부나 점막에서 병원균이 들어오는 것을 막거나 침이나 위액에 분비물을 내보내 병원균을 죽인다. 대식세포나 호중성구, 수지상세포 같은 먹보 세포들이 출동해 병원균을 감싸 흡수하듯이 잡아먹거나 자연살생세포 같은 킬러가 병원균을 죽인다. 이 세포들은 모두 백혈구다.

먹보 세포들은 어떻게 병원균을 알아볼까. 이것이 이번 노벨상의 핵심이다. 미생물에는 병원균임을 알리는 단백질이 붙어 있다. 먹보 세포는 바로 이것을 감지한다. 먹보 세포에게는 TLR(톨 유사수용체)이라 불리는 ‘미생물 단백질 감지기’가 있기 때문이다. TLR이 미생물 단백질을 감지하면 선천성 면역계에 병원균이 들어왔다는 경보를 울린다. 호프만 교수는 초파리를 이용한 실험으로 가설로만 존재하던 TLR을 발견했다.

강력한 면역 반응 부추기는 수지상세포

브루스 보이틀러

율레스 호프만
















발표 사흘 전에 작고한 랠프 슈타인만 박사는 선천성 면역과 후천성 면역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인 수지상세포를 발견했다. 수지상세포는 나뭇가지가 뻗어 있는 것처럼 생겨 이런 이름이 붙었으며, 혈액이나 림프, 피부, 조직 등 우리 몸 전체에 퍼져 있다. 슈타인만 박사는 호프만 교수와 보이틀러 교수가 TLR을 발견한 것(1990년대)에 앞서 1970년대에 이미 수지상세포를 발견했다.
그는 후천성 면역세포, 즉 B세포와 T세포가 어떻게 병원균이 침투했음을 알아내는지 연구했다. 이들 세포는 감염되자마자 즉각 반응하는 세포가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가 병원균의 침입을 알리고 활성화시킨다고 생각한 것이다. 수지상세포는 병원균이나 종양을 발견하면 잡아먹고 분해한 뒤 T세포에 이를 알렸다. T세포를 활성화 시켜 더 빠르고 강력한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것이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과학자들은 서로 다르게 작용한다고 알려져 있던 두 면역계가 실제로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기존 면역학의 판도를 바꿔 놓았다. 이들의 발견은 면역 활성 단계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게 했으며, 선천성 면역이 후천성 면역을 활성화하는 원리를 응용해 감염 질환을 예방하는 백신이나 암 치료제를 개발하는 의학 혁명으로 이어졌다.

                                                                                                     글 | 이원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출처 | FOCUS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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