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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력한 이집트 왕, 투탕카멘의 신비가 벗겨진다!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이집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파라오입니다. 그 파라오 중에서 현재 제일 인기 있는 왕이 투탕카멘인데요. 왕들의 계곡(왕들의 무덤)에서 발견된 투탕카멘의 무덤이 그대로 복원되어 한국에 왔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왕의 무덤에 엄청난 보물을 같이 묻었지만 거의 다 도굴꾼들에 의해 약탈당했습니다. 그런데 투탕카멘은 다른 파라오들과 달리 3000여 점이 넘는 보물이 잘 보존되어진 체로 무덤과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덕분에 고대 이집트에 대한 고고학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는데요.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함께 만나볼까요?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열리는 전시

이집트의 왕 투탕카멘은 누구?

고대 이집트 제 18대 왕조 제12대 왕으로, 기원전 1347년경~1338년경에 재위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수많은 왕들 중에 사실 투탕카멘은 그다지 존재감이 없었습니다. 8세의 어린나이에 즉위했지만 국정의 실권은 섭정과 장군이 장악했기 때문이죠. 거기다가 투탕카멘은 재위 9년만인 18세로 사망했고, 무덤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투탕카멘에 대해 알려진 바도 없었습니다.

투탕카멘 마스크.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눈에는 석영을, 눈동자에는 흑요석을 상감해 넣어 무덤에서 발견된 보물 중 최고로 꼽힌다.


그러던 중, 1922년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에 의해 왕들의 계곡에서 투탕카멘의 무덤이 발견됐습니다. 투탕카멘은 황금마스크를 쓴 미라로 발견됐는데, 이 황금마스크는 현재 이집트 카이로 박물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전시품이기도 합니다. 훼손된 다른 왕들의 무덤과는 달리 투탕카멘의 무덤은 미라를 비롯해 다량의 부장품이 거의 완전한 채로 남아 있었고, 당시 파라오의 매장관습을 아는데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왕의 부활에 필요한 내장을 넣는 카노포스 용기, 왕좌와 침대, 가구, 의류, 장신구, 무기 등이 포함되어 있어 당시의 호화로운 궁전생활과 높은 공예수준을 확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이 무덤에서 발견된 것들을 과천과학전시관에 그대로 옮겨와 전시하고 있습니다.

투탕카멘 무덤의 구조

전실

비밀의 방


 

 

 

 

 



전실에는 600개가 넘는 유물들이 산처럼 쌓여있었는데 이 방은 3300년 동안 아무도 들어간 적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또 비밀의 방에서는 화려한 설화석 그릇, 동물들이 그려진 소파, 음식을 저장하는 그릇 등이 발견 됐습니다.

겹겹이 쌓여있는 투탕카멘의 무덤!

, 이 방은 바로 투탕카멘의 무덤이 발견된 방입니다. 사당의 덮개를 열자 내부에 3개가 순서대로 더 들어있었고, 4번째 사당 안에는 또 다른 3개의 석관이 있었습니다. 석관 내부에서 미라 형태의 관 3개를 더 발견했는데요, 도대체 몇 겹으로 싼 걸까요? 2겹? 3겹? 아뇨, 무려 10겹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겹겹이 싸인 관들은 영원의 집을 위한 것이었다는데요, 파라오가 죽어서도 완벽한 보호 아래 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현실 안에 있는 사당 3개

미라까지 겹겹이 쌓인 모습


미라 바로 전의 모습

가장 안쪽 관은 110kg의 순금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안에는 드디어 머리에 황금 마스크를 쓴 투탕카멘 왕의 미라가 있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미라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이집트인들은 미라를 만드는 과정을 전혀 기록에 남겨놓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가 남긴 이야기를 통해서만 미라제작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헤로도투스에 따르면 먼저 갈고리형의 막대기를 이용하여 코를 통해 뇌를 꺼냅니다. 그 후 몸통 옆쪽을 절개해 내장을 빼 시체가 썩지 않도록 했죠. 그 다음 빈 복부를 씻어내고 탄산소다 가루를 시체 위에 가득 뿌렸습니다. 그 후 약 40일 지나 검게 마른 시체에 칠을 하고 향유를 바른 후, 손가락부터 시작해 시체를 아마포 붕대로 쌌습니다. 마지막으로 붕대에 싸인 시체를 수직방향으로 한번, 수평방향으로 세 번 동여매고 매장 수의로 덮는 과정을 거쳤다고 합니다.

미라 발굴당시 투탕카멘의 얼굴

이집트 연구원이 컴퓨터 단층촬영법으로 재구성한 투탕카멘의 얼굴

 

 

 

 

 

 

현대과학으로 들여다본 투탕카멘! 

이후 투탕카멘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었습니다. 1968년에는 최초로 미라의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두개골에서 상처와 뼛조각이 발견되자 타살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2005년에는 방사선 기술을 이용하여 두개골 뒤쪽의 구멍과 투탕카멘의 생전 상처까지도 발견했으며, 가장 최근인 2007년에는 투탕카멘이 말라리아에 걸렸었다는 사실도 연구결과로 발표되었습니다. 이처럼 현대과학기술은 고대 미라의 죽음의 원인과 그 시대의 상황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괴테는 “역사의 의무는 진실과 허위, 확실과 불확실, 의문과 부인을 명확히 구분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의 투탕카멘 무덤 발견은 그 당시의 진실과 의문을 풀어주는 최고의 발견이었습니다.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전은 내년 2월까지 계속된다고 하니,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투탕카멘 무덤을 발견하기까지의 이야기와, 투탕카멘 무덤의 실제크기를 체험하며 당대 이집트의 진실과 의문을 파헤쳐보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국립과천과학관에 들러 생생한 역사공부를 해보시는게 어떨까요?

                                                             글, 사진 |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블로그 기자 조 선 율

※ 이집트의 미이라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전!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미이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지난번 게재된 '미라, 한국 고병리학의 길을 열다' 보시면 그 궁금증을 푸실 수 있습니다! 자, 모두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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