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 연구기관으로의 도약대, 국가연구개발원
출연연 개편으로 융합시대 준비한다!(2)

 

세계를 이끄는 연구기관들 

그렇다면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해외 유수 연구기관들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에게 없는 무엇이 있기에 양질의 연구성과를 그토록 많이 낼 수 있는 걸까?

막스플랑크협회는 과학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최상급의 연구성과를 내고 있다. 사진은 2007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사이언스터널 특별전. 사이언스터널은 막스플랑크협회가 직접 자신의 연구성과를 12개의 주제로 나누어 터널 형식으로 전시하는 행사다.

국과위가 국가연구개발원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참고한 기관 중 하나가 독일의 막스플랑크협회다. 막스플랑크협회는 독일의 독립 비영리 연구기관의 연합회다. 이 협회는 1911년, 베를린대학 100주년을 맞아 ‘카이저 빌헬름 학회’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기능을 잃었다. 그러다 1948년 2월 26일 재건되어 현대 양자역학의 효시이자 물리상수에도 이름을 남긴 독일의 과학자, 막스 플랑크의 이름을 따 새로 출발했다. 현재 막스플랑크전파천문학연구소 등 80여개의 연구기관으로 구성되어 자연과학과 생명과학은 물론, 사회과학부터 미학에 이르기까지 기초 학문을 망라하는 연구를 수행한다.

막스플랑크협회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눈부신 연구성과다. 현재까지 막스플랑크협회는 노벨상 수상자를 17번이나 배출했다. 연구기관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숫자이며 과학기술강국인 이웃 일본이 지금까지 받은 노벨과학상 숫자에 맞먹을 정도다. 막스플랑크협회의 놀라운 성과는 협회의 창립 이념과 운영 형태 때문이다. 막스플랑크협회는 과학자가 스스로 만들어 운영하는 과학자 자신을 위한 기관이다. 과학자들이 연구관리와 운영, 계획을 모두 직접 하며 각 연구소는 독자적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사실 막스플랑크협회가 이처럼 연구자들의 자유로운 네트워크처럼 운영되는 이유는 독일 특유의 학문관 덕분이다. 베를린 대학 설립에 참여한 훔볼트(Karl Wilhelm von Humboldt, 1767~1835)는 교육과 학문에서 ‘일반적 교양’을 강조했다. 일반적 교양이란 한 인간이 자연, 문화, 사물과 끊임없이 교류하며 조화롭게 능력을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이 이념은 독일 고등교육기관과 연구기관에 녹아들어 서로 독립적인 다양한 분야가 장벽 없이 교류하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조성됐다.
독일의 프라운호퍼연구협회가 개발한 3세대 인간형 서비스로봇 ‘케어로봇3(Care-O-bot 3)’. 프라운호퍼연구협회는 응용과학 전반을 담당하여 시장친화적인 기술과 제품 개발에 집중한다.

막스플랑크협회가 과학 전반을 망라한다면 프라운호퍼연구협회는 응용과학 연구소들의 연합체다. 프라운호퍼연구협회는 독일 전역에 산하 56개의 연구기관을 두고 있으며 각 연구기관들은독립적으로 운영된다. 프라운호퍼연구협회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프라운호퍼식 모델’이라는 펀딩 모델이다. 이 모델에 따르면 프라운호퍼연구협회는 예산의 60%를 산업체나 특정 정부기관이 발주한 프로젝트를 수주하여 충당하고 나머지 40% 예산을 연방 및 지방정부로부터 보조금을 지원받아 선행 연구에 투자한다. 응용과학을 연구한다는 특성상 시장친화적인 연구를 수행하면서 기반기술을 함께 연구하는 데 유리한 방식이다.

독일 외에도 앞서 언급한 일본의 RIKEN과 AIST, 프랑스의 CNRS(국립과학연구원), CARNOT(까르노연구소) 등 세계의 주요 연구기관들은 모두 연구자들의 독립성이 보장되고 연구과제를 과학자들이 직접 설정하며 분야간 상호 교류가 자유롭다는 공통점이 있다. 무엇보다 연구소들을 총괄하는 기구가 과학자들이 중심이 된 단일 조직으로서 연구소 위에 군림하지 않고 관리와 행정 역할에만 치중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한국 과학기술계가 나아갈 방향 

국과위는 ‘출연연 발전 민간위원회’가 제시한 안과 해외 사례를 참고하여 국가연구개발원 설립안을 냈다. 이 안에 따르면 현재 과학기술 분야 27개 출연연 중 18개를 단일법인화한다.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과학자들이 주축이 된 단일 법인으로 연구기관들을 묶어 독립성을 확보하는 한편 상호 교류를 활성화하여 융복합 연구를 촉진하겠다는 방안이다.

김차동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상임위원이 1월 25일 오전 대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대전지역 연구개발특구 출입기자단을 대상으로 출연연 선진화방안 관련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설명을 하고 있다.

국가연구개발원이 설립되면 현재 기초기술연구회와 산업기술연구회로 양분되어 운영되던 27개 과학기술 관련 국가 출연연구기관이 국과위 소속의 국가연구개발원과 부처 직할 출연연구기관 체제로 전환된다. 개별부처의 산업육성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담당 부처 사업을 단독 수행하는 편이 효과가 좋은 기관과 기초연구 성격이 강하여 교과부의 기초과학연구원(ISB)과 결합하는 편이 나은 기관은 각각 소관 부처 직할로 남기기로 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과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한국정보보안연구원은 지경부에,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한국해양연구원은 국토해양부에, 한국식품연구원과 김치연구원은 농림수산식품부 산하에 둔다. 국가수리과학연구소와 한국천문연구원은 교과부 산하 기초과학연구원 부설 연구소 설치한다. 이는 국가연구개발원과 기초과학연구원의 역할분담에 따른 것으로, 순수과학 기초 연구는 기초과학연구원에서 수행하고 국가연구개발원은 국가 어젠다나 전략기술, 융복합 분야 원천기술 등 목적이 분명한 연구에 집중한다.

일부에서는 출연연이 통합될 경우 개별 연구기관의 정체성이 희석될 수 있다며 우려한다. 그러나 이번 개편안에 독일 막스플랑크협회를 참고한 점을 보아도 알 수 있듯, 각 연구기관의 독립성과 정체성은 고스란히 유지된다. 융합연구란 여러 분야가 각자의 강점을 살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것인데, 기관의 정체성이 흐려지면 융합연구의 효과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출연연에 지원하는 묶음예산을 대폭 확대한 이유도 각 기관이 강점있는 연구분야를 직접 정하여 육성함으로써 연구기관별 특색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프로젝트 중심의 연구과제가 자유로운 연구에 장애가 된다는 비판을 받아들여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출연금 예산 비중을 2014년 70%까지 올릴 계획이다. 정부 출연금 비중이 높아지면 기관 운영을 위해 무리한 프로젝트를 추진하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당장의 경제적 효과는 작지만 타연구에 반드시 필요한 기초분야를 본격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

국과위는 세부안을 마련하고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하 정출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출법 개정안은 지난 1월 17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어 1월 20일 국회로 이송되었으며, 이에 따라 3년이 넘게 논의되어 온 출연연 거버넌스 의제는 정부 내 절차를 마무리하고 국회의 결정사항으로 넘어갔다.

법률 개정 후 3개월이 지나고 설립 준비가 끝나면 가급적 상반기 내에 국가연구개발원이 설립된다. 이를 위해 국과위는 지금까지 내부적으로 운영해 오던 국가연구개발원 설립 태스크포스를 1월중 ‘국가연구개발원 설립준비단’으로 확대 개편하고 입법지원 활동을 포함한 구체적인 설립 준비에 착수했다. 국가연구개발원 설립준비단은 국과위 김차동 상임위원을 단장으로 출연연 관계자 및 외부전문가로 구성되며 국가연구개발원 설립 기본방향 마련, 이해관계자 의견수렴, 국회 입법지원 활동, 대국민홍보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학문은 깊고 넓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까지 한국 학문은 다양한 분야간 교류가 적었던 탓에 깊기는 했지만 넓지는 못했다. 전문성은 깊이의 영역이지만 창의성은 너비의 영역이다. 국가연구개발원 설립을 통해 한국 과학의 지평이 더욱 넓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출처_FOCUS 2월호
글_김택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 사진_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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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가이(Goodguy)

우리 생활 속 과학이야기

일류 연구기관으로의 도약대, 국가연구개발원
출연연 개편으로 융합시대 준비한다!(1)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이하 국과위)는 지난해 12월 14일,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소(이하 출연연) 개편안을 발표했다. 국과위 소속으로 국가연구개발원을 설립하여 기존 출연연을 통합한다는 것이 골자다. 이번 안은 융합시대를 앞두고 분야간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연구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민간 전문가들이 제안한 안을 적극 반영하였다. 국과위가 출범한 지 이제 1년이 되어가는 지금, 새로 구성되는 국가연구개발원의 배경과 특징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정하웅 교수가 연구한 정치인간 네트워크 분석. 융합연구는 새로운 제품과 기술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여 세상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도 있다.

KAIST 물리학과의 정하웅 교수의 연구는 독특하다. ‘싸이월드 일촌관계 분석’이나 ‘도로망에 따른 교통량 분석’, ‘정치인 사이의 네트워크 분석’처럼 과학과 별 인연이 없어 보이는 것들이 주요 연구과제다. 정 교수의 전공분야는 네트워크 과학. 다양한 요소들 사이에 얽힌 관계와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므로 다루는 대상에 제약이 거의 없다보니 특정 분야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연구한다. 실제로 네트워크 물리학은 생명과학, 신경학, IT 등 과학기술분야뿐 아니라 경제학, 마케팅 등 과학 외 분야에까지 다양하게 적용되어 성과를 내고 있다. 융합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트워크 과학은 정 교수가 미국 유학 시절, 지도교수와 함께 심심풀이로 시작했던 연구로부터 탄생했다. 연구과제와 상관없이 순전히 재미로 의기투합한 결과가 새로운 분야의 창출이라는 엄청난 결실로 이어진 것이다. 정 교수는 이러한 연구가 가능했던 이유로 학제간 교류가 자유로운 분위기를 꼽으며 산타페 연구소를 예로 들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산타페 연구소는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교류하는 분위기로 유명하다. 특별한 계획 없이 온갖 계기로 떠오른 발상을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즉석에서 협력하여 연구로 옮긴다. 자연히 연구자들의 몰입도가 높고 창의적인 성과가 많이 나온다. 산타페 연구소뿐 아니라 선진국들의 대형 연구소는 학제간 교류를 중요시하여 다양한 과학자들이 모일 수 있는 중앙홀을 배치하거나 연구실 벽을 유리로 만드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한다.


한국 과학기술, 창조형 연구로 전환 시급 

한국은 선진국을 모방하고 추격하면서 빠르게 성장했지만 경제와 기술수준이 일정 정도에 오른 최근 몇 년간은 더 이상 급속한 성장을 못하고 있다. 기존의 추격형 패러다임은 선진국을 뒤쫓기에는 좋지만 선두그룹에 들어선 지금에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창조형 R&D로 전환한다는 목표 하에 과학기술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현실은 목표치에 어느 정도나 부합할까?

교육과학기술부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SCI논문(국제논문) 편수는 세계 11위권이다. 경제규모 순위와 비교하면 그리 나쁘지 않은 수준으로 보인다. 그러나 논문의 평균 피인용 회수는 2009년 3.50으로 세계 30위 수준에 불과하다. 노벨상 후보로 평가받는 피인용 회수 상위 1% 과학자 6,332명 중 한국 과학자는 4명이다. 피인용 회수는 타 연구자들이 해당 논문을 얼마나 많이 참고하는지 나타내는 것으로 피인용 회수가 많을수록 과학기술계에서 주목받는 중요 연구라는 뜻이다. 이는 한국이 일부 기술 분야에서는 선두 그룹에 올라섰지만 과학기술 전체로 보았을 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 이웃이자 경쟁상대인 일본의 연구기관과 비교해 보면 한국 연구생산성의 현 주소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일본 과학기술 연구의 핵심은 RIKEN(이화학연구소)와 AIST(산업기술종합연구소)다. RIKEN은 1917년 설립된 연구소로 2010년 기준 총 3,710명의 연구원이 기초과학을 연구하고 있다.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9명이나 배출했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연구기관이기도 하다. AIST는 응용연구를 수행하는 기관으로 로봇 관련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에서 RIKEN과 AIST에 비견할 만한 곳이 기초기술연구회와 산업기술연구회다. 양국의 연구기관을 비교해 보면 총인원은 한국 쪽이 많음에도 1인당 실적 기준으로 논문 수, 특허출원 수, 기술이전 사례, 기술료 모든 면에서 한국이 열세다. 특히 기술료 차이가 커 기초기술연구회와 산업기술연구회의 경제적 효과가 낮은 것으로 확인된다. 현장 연구자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출연연 연구성과 수준을 10점 만점에 6.8점 수준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2011년)

김은성 KAIST 물리학과 교수의 초고체 연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실험은 RIKEN에서 실행됐다. 실험에 필요한 ‘크리오스텟’이 RIKEN에 있었기 때문이다. RIKEN은 일본을 대표하는 연구기관으로 세계에서 세 개 뿐인 크리오스텟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과 한국이 보이는 과학기술 격차의 원인은 무엇일까? 정부는 한국 과학기술의 현 주소를 점검하고 장애요인을 진단하기 위해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이하 자문회의)를 구성했다. 자문회의는 출연연 우수연구자 대상 인터뷰, 출연연과 대학, 기업연구소의 연구자 대상 설문조사, 주요 출연연과 R&D 관리기관 간담회, 해외 사례 분석, 출연연 성과에 대한 정량분석 및 국제 비교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과학기술계의 개선점과 정책방향에 대해 심층 분석했다. 탁상행정에 그치지 않도록 현장을 중심으로 의견을 수렴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선 연구자들은 한국 과학기술의 가장 큰 장애요인이 과학기술계 조직구성, 정원 제한에 따른 인력 정체, 과제 중심의 경쟁 예산(PBS) 순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중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힌 것이 과학기술계 조직구성, 거버넌스 문제였다.
현재 과학기술계는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 산하의 기초기술연구회와 지식경제부(이하 지경부) 산하의 산업기술연구회로 양분된 채 상호 교류가 별로 없으며 각 출연연의 관할 부처도 다르다. 자연히 연구자들간 교류 기회도 줄어들 뿐 아니라 행정 부담이 많아지다 보니 과제에 집중하기도 시간이 빠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다양한 분야의 융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설문에 참여한 과학기술인들은 다양한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교류하는 한편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다음편에 이어집니다..

출처_FOCUS 2월호
글_김택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 사진_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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