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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을 닮아가는 로봇들
로봇공학자, 해부도를 들다


로봇을 한번 떠올려 보자. 사람처럼 뚜벅뚜벅 걷는 휴머노이드, 강물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로봇, 지그재그로 기어가는 뱀로봇 등 가지각색의 로봇이 생각난다. 혹시 문어처럼 흐느적거리는 로봇을 상상한 독자가 있는지. 최근 문어 같은 연체동물은 물론이고 벼룩로봇, 식물을 닮은 로봇 등 새로운 형태의 로봇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모양은 물론 움직임도 실제 생물과 똑같다는데, 로봇공학자들은 왜 이런 형태의 로봇을 만드는 걸까?

어항 안에 페트병을 떨어뜨렸다. 하얀 문어다리가 다가오더니 페트병을 부드럽게 감싸안는다. 먹이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챈 걸까, 문어는 다시 다리를 스르륵 풀었다. 카메라가 어항 전체를 비추자 문어 다리 끝에 붙은 제어장치가 드러났다.
“뭐야, 이거 진짜 문어가 아니네?” 영상 속 주인공은 로봇이었다. 하지만 말랑말랑한 표면은 물론 흐느적거리는 움직임이 분명 문어다. 로봇이 어떻게 이렇게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걸까. 다양한 생체모방로봇을 개발하고 있는 조규진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를 찾아갔다.

문어로봇의 탄생
“아, 문어로봇이요? 다리 속에 줄을 넣어서 움직이는 겁니다.”
조 교수는 문어로봇을 잘 알고 있었다. 이름은 ‘옥토봇’. 이탈리아 피사 산타나고등연구원의 세실리아 라치 교수팀과 유럽의 여러 연구팀이 공동으로 개발 중이다. 아직 문어다리를 2개밖에 만들지 못했지만 2년 안에 8개를 모두 완성할 예정이다.
단순한 구조지만 문어로봇의 구조는 문어다리와 꽤 비슷하다. 실제 문어다리에는 중앙을 길게 가로질러 신경이 하나 놓여 있다. 이 신경을 둘러싼 형태로 근육이 붙어 있는데, 신경이 움직이는 대로 근육이 따라 움직인다. 문어로봇은 신경 대신 가운데 강철 줄을 넣고 이를 부드러운 실리콘으로 감싼 것이다. 이런 구조 때문에 문어로봇은 문어처럼 움직일 수 있다. 강철 줄을 잡아당기면 다리가 줄어들고, 줄을 놓으면 다리가 다시 길게 늘어난다. 문어가 앞으로 갈 때 다리를 늘였다 줄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 강철 줄을 이리저리 흔들면 실리콘 다리가 따라 움직인다. 문어가 몸을 닦고 피부를 빗질할 때 다리를 이리저리 흔드는 것과 같은 행동이다. 결과만 놓고 보면 ‘그걸 누가 못해’ 하는 말이 나올 정도로 쉽지만, 생물의 해부도를 보고 로봇을 만든다는 아이디어를 내기는 어렵다. 게다가 문어 같은 연체동물을 로봇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더욱 기발하다.

이탈리아 피사 산타나고등연구원을 중심으로 유럽의 여러 연구팀이 모여 문어 다리의 움직임을 따라하는 문어로봇을 개발 중이다. 이 연구의 이름은 ‘옥토봇프로젝트’다.

문어로봇의 움직임이 빛을 발할 때는 물건을 쥘 때다. 문어가 먹이를 먹을 때처럼 부드러운 다리로 물체를 꼭 조이는데, 이때 물체와 다리 사이에 틈이 생기지 않아 물체가 빠져 나가지 않는다. 특히 유리 같이 깨지기 쉬운 것을 들 때 부드럽게 잡고 놓을 수 있어 더욱 좋다.
문어로봇을 만든 연구팀은 이 문어로봇을 수술용 로봇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부드럽고 유연해 몸속을 편안히 지나갈 수 있어 지금 쓰는 로봇보다 몸속 조직과 장기에 손상을 덜 주기 때문이다. 또 아예 나노크기로 만들어 몸속에 넣으면 이 로봇이 몸속을 헤엄쳐 다니며 온몸 구석구석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파리지옥로봇의 선물
로봇 공학자들이 연구하는 생물은 동물에 국한되지 않는다. 식물의 움직임을 흉내내기도 한다. 특히 파리가 앉으면 잎을 닫아버리는 파리지옥이 인기다. 과학자들이 파리지옥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잎이 닫히는 속도 때문이다. 파리지옥의 잎이 닫히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0.1초. 어떻게 파리 지옥은 이렇게 움직일 수 있을까.

조규진 교수팀은 파리지옥의 잎처럼 쌍안정성을 가진 소재를 이용해 로봇을 개발했다. 로봇의 잎이 완전히 닫히는데 0.12초 밖에 걸리지 않는다.


미국 하버드대의 라크슈미나라야난 마하데반 교수는 파리지옥의 잎이 빨리 닫히는 것잎의 구조적 특성 때문이라고 밝혔다. 잎을 이루는 섬유질은 총세 겹으로 이뤄져 있다. 그 중 맨 위와 아랫면의 섬유질은 세로 방향으로 배열돼 있다. 이 양쪽 섬유질이 힘의 균형을 이뤄 상황에 따라 닫힌 형태와 열린 형태, 두 형태가 가능하다. 이렇게 하나의 구조가 두 가지 형상을 가지는 성질‘쌍안정성’이라고 한다. 평소엔 늘어나 있던 바깥쪽 섬유질의 장력으로 잎이 밖으로 벌어져 있다가 파리가 잎에 앉으면 잎의 힘 균형이 순식간에 무너지며 안쪽 섬유질의 장력으로 잎이 닫힌다. 머리를 고정할 때 쓰는 똑딱핀을 생각하면 쉽다. 한쪽으로 구부러져 있지만 볼록하게 튀어나온 부분에 손을 갖다 대는 순간 반대편으로 ‘탁’ 휘어지는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네이처’ 2005년 1월 27일자에 실렸다.

우연히 조 교수는 실제 파리지옥처럼 쌍안정성을 가진 소재를 알게 됐다. 탄소섬유를 연구하는 같은 학교 조맹효 교수와 융합연구를 하면서다. 소재를 이루는 탄소가 한 층은 가로로, 다른 층은 세로로 연결돼 있다. 이 소재로 두 잎을 만들고 두 잎 사이는 형상기억합금 스프링으로 연결했다. 이 형상기억합금 스프링은 힘의 균형을 무너뜨려 잎의 형상이 다른 형상으로 변할 수 있게 만든다. 이렇게 만든 파리지옥로봇도 잎의 모양이 바깥으로 벌어진 형태에서 안으로 오그라드는 모양으로 순식간에 바뀐다.

“파리지옥 로봇을 어디에 쓸 수 있냐고요? 로봇 자체보다는 로봇의 소재를 이용할 생각입니다.”
파리지옥을 만드는 데 쓴 재료로 인공근육을 개발할 수 있다. 기존 인공근육 중 반응속도가 가장 빠르기 때문에 눈꺼풀이나 표정을 나타내는 얼굴 근육으로도 쓸 수 있다. 안면마비 환자에게 웃음을 찾아줄 수 있는 기술인 것이다.

“우리가 새로운 형태의 로봇을 만드는 이유는 여기 있습니다. 로봇을 만들 때마다 우리 생활에 도움이 되는 기술이 새로 나오기 때문이죠. 앞으로도 계속 이런 로봇을 만들 생각입니다.”

출처 | FOCUS 2월호
글 | 신선미 동아사이언스 기자 / 사진 | istock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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